국제신문  김용호 기자 kyh73@kookje.co.kr 2012-05-13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본 부산항. 산복도로는 항구의 모습을 이처럼 넓게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국제신문DB

 

 

- 생태와 인문이 만나는 접점
- 사람냄새 짙게 밴 삶의 터전
- 보존·활용방향 함께 찾아야

사람이 살아가는 영역은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으로 구성된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설명이다. 부산은 낙동강 바다 금정산 등 뛰어난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환경' 이라고 하면 흔히 자연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최근 부산에서는 인문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대표적인 게 산복도로다.

■산복도로를 여행하다

	산복도로 생태투어 참가자들이 168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거위의 꿈'은 환경단체인 '생명그물'이 설립한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보전을 주제로, 생태여행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여행사다.

지난 11일 오전 9시30분. 부산역 광장에 부산 산복도로 여행 '2012 용트림, 오르락 내리락'에 참가하려는 대학생 시민 등 20여 명이 모였다.

부산역 앞 중앙로 횡단보도를 건너 50m쯤 직진하자 풍림돼지국밥집 사거리에 닿았다. 진행을 맡은 산복도로 마을만들기 활동가이자 거위의 꿈 이사인 변강훈 씨는 "이 사거리를 경계로 부산역 쪽은 매립지"라고 설명했다. 투어 참가자들이 그 다음 멈춘 곳은 1920년대 초 문을 열었던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병원인 백제 병원. 행려환자 인체 실험 등 괴소문으로 인해 병원 문을 닫은 이야기와 일본군 장교 숙소, 중국식당, 예식장 등으로 사용되다 최근 근대건축물로 지정이 추진된다는 설명은 흥미진진했다.

초량전통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육거리에서 변 이사는 초량천 복원 계획을 설명했다. 내년쯤이면 복원사업이 시작돼 중앙로에서 부산고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에 늘어선 1층짜리 식당건물도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부산고를 지나 산복도로(망양로)까지 오르는 길은 좁은 골목이었다.

산복도로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초량시영아파트에 운영 중인 '골목점빵'. 주민들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시작한 가게다. 앙증맞은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가습기(2000원), 요구르트 제조기(1000원) 비누 등 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산복도로에는 인도 보도블록 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60대 할머니는 낯선 방문객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건설부 장관이 어떤 놈이고? 사람 못살게 벌써 몇달째 미친 짓을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전 10시30분께 산복도로 전망대에 도착했다. 부산항과 영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변 이사는 "북항이 재개발되고, 북항대교가 개통되면 현재 부산항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다. 망망대해를 거쳐온 대형 컨테이너선이 입항하는 장면을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화여중 뒷길에 이르자 옥상마다 파란 물탱크가 보였다. 수돗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물을 미리 받아놓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동구청은 철거하기도 골치아픈 물탱크를 상자텃밭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오전 11시20분께 마마맨션 옆으로 난 길(영초길 191번길)을 따라 168계단으로 접어들었다. 45도 경사의 계단은 "전단지 아르바이트 대학생도 욕을 할 만큼, 겨울철에는 어르신들이 낙상사고를 많이 당할 정도로" 가팔랐다. 그러나 산복도로에서 부산역 방면으로 내려갈 때 돌아서 걸어가기에는 길이 너무 멀어서 주민들이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연보호 못지 않게 인문환경도 중요하다

	초량시영아파트 입주민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골목점빵'.

투어에 동행한 부산발전연구원 한승욱 박사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어떻게 하면 가장 살맛나는 주거환경을 만들 것인가, 한 번 찾아왔다 떠나는 여행자의 눈높이가 아니라 주민들을 우선한 사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 이사는 "부산에서 자연생태와 인문환경이 만나는 접점이 산복도로다. 사람 냄새가 가장 짙게 밴, 부산의 허파같은 곳"이라며 "삶의 터전을 환경이라고 한다면 이곳을 어떤 방향으로 보존하고 가꿔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